‘이 웹툰에 내 30대가 다 있네.’
떡볶이와 강아지를 좋아하는, 어디든 한 명쯤 있을 법한 30대 여성의 삶을 그린 『유미의 세포들』.
〈네이버 웹툰〉 수요일·토요일 조회 수 1위, 누적 조회 수 30억 뷰, 회차당 댓글 1만여 개라는 화려한 이력이 증명하듯, 우리 모두의 이야기 같은 유미의 이야기로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이렇게 사랑스러운 웹툰을 그린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요? 『유미의 세포들』 피겨와 단행본, 포스터로 가득 찬 작업실에서 이동건 작가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작업실이 너무 예뻐서 감짝 놀랐어요. 일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멋스러운 카페에 가깝달까요.
예전에는 원룸 같은 곳에서 작업했는데, 뭐랄까… 좀 꾸며놓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옆에 화분이라도 있으면 기분 전환이 되잖아요.
작업실엔 자주 나오나요? 이동건 작가의 일주일은 보통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하네요.
우선 화요일 저녁에는 토요일에 나갈 회차에 무슨 내용을 그릴지 결정해요. 수요일엔 하루 종일 콘티만 짜고, 목요일엔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죠. 그리고 금요일 3시에 마감을 하고 나면 주말까지는 놀아요. 월요일이 되면 다시 작업실에 나오는데, 화요일 저녁까지는 광고 웹툰을 그리거나 신작을 준비하면서 여유롭게 보내곤 해요.

2011년 『달콤한 인생』으로 네이버 웹툰에 데뷔하기 전까지는 웹툰과 다소 먼 삶을 살았다고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고 대입 준비를 하면서 화실을 다녔지만, 웹툰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휴대폰 고리 같은 디자인 문구를 만드는 1인 기업을 차리고 나서였죠. 그런데 장사가 너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홍보를 위해 제품 이름을 딴 웹툰을 그려서 〈네이버 웹툰〉 ‘도전만화’ 코너를 포함해 이곳저곳에 올렸어요. 들어와서 제품 좀 사라고 웹툰 밑에 회사 웹사이트도 링크를 걸어두었고요. 그런데 1년이 좀 넘었을 때 〈네이버 웹툰〉에서 정식 연재를 제안하는 이메일이 왔어요. 그 메일을 보자마자 사업을 다 접었죠, 하하.

운명은 없어. 선택만 있을 뿐이야. 네 마음대로 하면 돼.『유미의 세포들』 61화
2015년 『유미의 세포들』을 내놓았어요. 유미를 움직이는 뇌세포들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신작을 위한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해주는 아내를 보고 “안 돌아가는 맷돌 굴리지 마”라며 놀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순간 머릿속에서 세포들이 맷돌을 굴리는 장면이 떠오르는 거예요. “무슨 세포가 더 있을까?”라며 아내와 아이디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탄생했죠.
유미의 머릿속엔 100개가 넘는 세포가 살아요.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점을 발견하면 그에게 알려주는 일을 하는 ‘점 세포’ 같은.
친한 친구들을 보면 “야 너 여기 점 있다”, “오 진짜? 몰랐네” 이러잖아요. 이거 한번 하려고 점 세포 만든 거예요, 하하. 나중에 후회했죠.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많이 만들지 않았을 거 같아요.

유미의 ‘프라임 세포(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세포)’는 ‘사랑 세포’입니다. 웹툰의 핵심도 자연스럽게 ‘사랑’이 되지 않았나 싶고요. 수많은 주제 중 왜 사랑을 택했나요?
인간의 감정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선 연애만 한 주제가 없죠. 연애를 하다가 뭔가가 잘되거나 잘 안 될 때 감정 변화가 가장 크게 일어났거든요. 그런데 사랑이라는 게 일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App Store 에디터와 스태프들을 가리키며) 봐요, 다들 공감하시죠? 결국 유미의 연애와 일, 이 두 가지가 번갈아 진행되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죠.
유미의 프라임 세포가 사랑 세포라면, 이동건 작가의 프라임 세포는 무엇일까요?
‘뒷북 세포’요. 꼭 원고를 보내고 나서야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아, 그때 이렇게 그렸으면 난리 났을 텐데’ 하고 늘 후회하죠.(웃음)

“원래 웹툰 안 보는데, 『유미의 세포들』은 꼭 봐”라는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웹툰 안 보던 사람도 보게 하는 이 작품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제가 잘 만들었기 때문에?(웃음) 그런 건 아니고, 이 웹툰의 가장 큰 무기는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세포’는 부수적인 요소고요. 예를 들어 유미가 남차 친구와 여행 가는 스토리를 구상한다면, 함께 여행을 간 연인들이 실제로 공감할 만한 포인트를 의식적으로 찾아내려고 해요. ‘아 맞아, 나도 이랬어’ 할 수 있는 포인트 말이에요.
『유미의 세포들』을 읽다 보면 작가가 독자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해요. ‘여자보다 여자를 더 잘 아는 작가’라는 평이 괜히 있는 게 아닌가 봐요.
여자보다 여자를 더 잘 아는 게 아니라, 남녀가 좀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아요. 보는 사람이 여성이면 “어떻게 여자 마음을 이렇게 잘 알아?”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남성도 “크으, 맞아! 이랬었지!” 하곤 해요. 사실 유미 캐릭터의 상당 부분에 저를 녹여내기도 했고요.

연애하면서 효율을 따지지 말아줘. 효율로 따지면 연애야말로 가장 비효율적인 행동이야.『유미의 세포들』 133화
종이 만화책부터 스마트폰에서 읽는 웹툰까지. ‘만화’라는 매체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꾸준히 진화해왔어요. 웹툰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언제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창작자 입장에선, 독자와 더욱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 ‘공감’ 버튼이나 댓글을 통해 독자의 반응을 바로바로 살필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장점이죠. 물론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요.
독자들의 반응 때문에 노선을 틀어버린 경우도 있었나요?
아… 정말 많았어요. 댓글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반발심이 생겼고, 내 마음대로 해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원래 잠깐 넣었다 빼려고 했지만 너무 인기가 많아서 어떻게든 끌고 왔던 바비라는 캐릭터를 결국 없앴어요. 뚜렷한 특색이나 치명적인 단점이 없는 밋밋한 캐릭터였거든요. 뭘 해도 이야기를 못 만들겠더라고요.

『유미의 세포들』은 〈네이버 웹툰〉의 첫 컷툰 중 하나예요. 아래로 내리는 스크롤툰에서 옆으로 넘기는 컷툰으로의 전환이 어색하진 않았나요?
처음엔 어떻게 그려야 하나 싶었어요. 컷이 가로로 길어야 공수가 줄어드는데, 컷툰은 정사각형이니 그림을 더 많이 그려야 했죠. 말풍선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등, 구도 잡기에도 애매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컷툰이 너무 좋아요. 차기작도 컷툰이에요.

컷툰의 매력을 꼽자면?
컷마다 댓글이 달리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물론 독자에게 그만큼 더 세세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그보단 독자들에게 웹툰 외의 즐길 거리, 그러니까 댓글을 보고 또 한 번 ‘빵’ 터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게 좋았어요.
게다가 독자들은 스크롤툰보다 컷툰을 좀 더 집중해서 읽는 거 같더라고요. 스크롤툰은 화면을 휘리릭 내리면 그만이지만, 컷툰은 그렇게 빠르게 넘길 수 없거든요.(웃음) 미워도, 싫어도 한 컷 한 컷 다 눈도장을 찍어야 그 회차를 끝낼 수 있죠.
컷툰은 극적인 효과를 연출을 하는 데도 효과적일 거 같아요.
그럼요. ‘다음 페이지’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뒷부분에 예상치 못한 걸 넣고 싶을 때 특히 유용해요. 가령 남자 캐릭터가 갑자기 고백하는 장면을 넣고 싶다면, 앞에선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다음 컷에 확 넣어버리는 거예요. 스크롤툰이었다면 “아악! 봐버렸어!”가 될 수 있지만, 컷툰에선 그 극적인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거죠.

‘좋은 웹툰’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웹툰을 그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나요?
재미있는 웹툰이 좋은 웹툰이죠. 그리고 원칙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읽기 쉬웠으면 좋겠어요. 흔들리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도 가볍게 볼 수 있을 만큼요. 글도 최대한 적어야 해요. 저는 글이 많으면 안 읽거든요. 제가 볼 때 쉬워야 남이 볼 때도 쉽죠.
누구든 웹툰 작가를 꿈꾸고, 누구든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웹툰 작가 지망생에게 조언 한마디 해준다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묵혀두지 말고 바로 웹툰으로 그려보세요. 다들 굉장히 거창하게 준비해서 데뷔하려고 하는데, 하루빨리 피드백을 받아보는 게 중요해요. 웹툰은 내가 보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남들 보여주려고 만드는 거잖아요? 아무리 불편해도 다른 사람들이 내 웹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야 해요. 만약 재미가 없다면 그 사실을 빨리 알아야 다른 걸 그리죠.